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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골 염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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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기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기사입력| 기사입력 14-04-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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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 이야기... 

등록일 : 1998년 01월 22일 10:14 

a갯골일출.jpg
 
오랜만에 소래염전을 느긋하게 다녀왔다. 수년 전에 내가 모시던 스승과 함께 일년여 동안을 매주 일요일 새벽에 나가서 어두컴컴한 벌판을 헤메이다 아침 해를 맞이하곤 하던 곳 중의 한 곳이다. 그 당시에는 염전이 살아있던 때라 아침 해가 뜨면 부지런한 일꾼들이 나와서 바닷물을 퍼올리는 물레를 돌리고 소금을 긁어모으던 모습을 보고, 사진에 담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값싼 중국산 소금에 밀려 염업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어 사람들이 떠나버리고 황량한 염전과 쓰러져가는 소금 창고, 그리고 주위에 흐트러진 외바퀴 수레며 소금 밀대등이 말없이 쌀쌀한 갯바람을 맞고있었다. 

a소금생산.jpg


염전의 현실을 말해주듯 날씨도 잔뜩 흐려있었고 빗방울이 바람에 날렸지만 촬영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늘 봐왔고 눈을 감고도 그려낼 만큼 익숙한 광경이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면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매력이 아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그나마 위안을 삼으며 촬영을 시작했다. 끝없는 벌판, 바람에 춤을 추는 갈대와 잡초들, 아직도 밀물때면 바닷물이 소리없이 밀려오는 수로와 회색빛 뻘을 보며 삼각대를 고정시켰다. 그냥 스쳐 지나면 아무것도 볼게 없는 곳이지만 카메라를 세우고 24mm 렌즈를 끼운 뒤 가까운 곳의 풀잎부터 저 앞의 갈대밭을 거쳐 먼산에 이르기까지 찬찬히 촛점을 바꾸어가며 바라보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고서 셔터를 눌렀다. 나의 오랜 친구 T-90, 나의 분신같은 그의 셔터소리는 언제 들어도 나를 흥분시킨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앉아서 맞은편에 앉아있는 뽀얀 얼굴의 처녀를 몰래 훔쳐보다가 살짝 눈이 마주친 때처럼...

135mm 망원렌즈로 바꾸고서 다시 바람에 날리는 풀입을 클로즈업 한다. 촛점링을 돌리면 하늘하늘 마른 풀잎들이 저마다 나에게 애타는 유혹의 손짓을 하다간 다른 녀석에게 자리를 내주고 아련히 흐려진다.

그중 난초처럼 선이 날렵한 녀석에게 촛점을 맞추고 손끝에 힘을 준다. 찰칵...
이제 그 녀석은 잠시후 빨간 불이 켜진 어두운 방에서 나의 부드러운 손길에 다시 살아날 것이고 종이와 화학약품으로 빚어내는 연금술에 의해 영원한 삶을 얻을 것이다...

잡초 우거진 뚝을 넘어서 소금창고로 다가간다. 물이 괸 웅덩이 옆에 고운 모래와 뻘이 섞인 흙 위로 빗물이 지나간 흔적이 고운 무늬를 남긴게 보였다. 삼각대의 중간 지주를 빼내고 가랭이를 최대한 벌려 거의 땅에 닿을 듯 카메라를 얹었다.

질감을 살려야 한다. 표준렌즈를 끼우고 필터를 빼버렸다. 렌즈와 뻘사이엔 겨울바람만 간간히 스쳐지나갈 뿐, 둘 사이의 사랑에 방해가 될 자는 아무도 없다. 촛점을 돌려가며, 노출을 바꿔가며 몇 커트를 잡고서는 눈을 돌렸다. 얼마 전까지 누군가의 손에서 수레를 밀고, 물레를 돌렸을 면장갑 한짝이 반쯤 흙속에 묻힌 채 거치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석에게도 새 삶을 주기로 했다. 저쪽 잡초 아래에 빨갛게 녹슬은 못 더미가 보인다. 아아...이 모든 것들에게 새 생명을 주어야 한다. 나는 신이다. 그러나 그 신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a소금창고_1993.jpg

굳게 잠긴 소금창고와 소금을 모으던 밀대를 광각렌즈 가득히 담았다. 지금쯤 대도시 어느 모퉁이에서 힘들게 하루를 꾸려나갈지도 모르는 소금 생산자의 이름이 희미하게 남은 팻말도 TRI-X에 담았다. 깨진 문틈 사이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작은 틈새로 간신히 몇개의 빛줄기가 새어드는 컴컴한 소금창고 내부를 잡는다. 조리개 5.6에서 셔터 떨어지는 속리가 한참 걸린다. 철~컥. 아래 위로 브라케팅을 하니 그 소리가 두배로 길어졌다 다시 반으로 줄어든다. 

저 건너편 풀숲에서 코매트가 뭘 봤는지 삼각대를 세우고 한참을 촬영에 열중해 있다. 스물 몇살의 나이답지 않게 믿음이 가는 친구다. 그 나이에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하며 몰래 135mm 망원을 들이대고 셔터를 눌렀다. 젊은 코매트도 그의 인생의 한 찰라를 나에게 저당잡힌 것이다. 다른 사물을 잡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실연기처럼 가느다란 어둠의 자락이 어느새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 모든 과거의 흔적들과 이별하고 떠나야 할 시간이다. 코매트를 불렀다. 그 친구도 만족한듯 넉넉한 얼굴로 다가왔다.  둘만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기 위해 증명사진을 찍어두기로 했다. 소금창고 앞의 커다란 바위에 앉은 코매트에게 앵글을 맞춘뒤 타이머 셔터를 누르곤,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는데도 괜히 호들갑스럽게 달려가 바위에 걸터 앉아서 카메라를 바라본다. 반짝반짝하는 불빛이 빨라지면서 나의 얼굴은 의무감에 가득한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찰칵!!

 
a소금창고_안개2.jpg
 
1998년 1월 17일 셋째 토요일, 좋은 하루였다.

복사골에서 [뎔믄옵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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