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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골 염전이야기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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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기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기사입력| 기사입력 14-04-1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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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 이야기 IV... 


등록일 : 1998년 12월 10일 12:32 


12월 1일 새벽 다섯시 삼십분. 

알람시계 소리에 눈이 떠지자 바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대충 채비를 하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가니 그도 곧 도착을 했고 함께 다마스를 타고 소래염전를 향해 어두운 길을 나섰다. 
염전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여섯시 경, 아직도 주위는 짙은 어둠에 쌓여 있었고 빗방울마저 쌀쌀한 바람에 날려 차장에 작은 물방울들이 점으로 찍히고 있었다. 



촬영이 썩 순조롭지는 않을듯한 예감이 들었지만 오랫만에 느껴보는 염전의 새벽 공기는 예나 지금이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다. 망설일 겨를도 없이 각자 카메라 가방과 삼각대를 메고, 차안에 굴러다니던 낡은 우산을 비상용으로 허리춤에 매달고는 어두운 둑길을 터벅터벅 걸어들어갔다. 아득한 벌판 저 너머에 이제 막 눈을 뜬 도시의 불빛을 등대 삼아 걸어가는 길옆으로는 줄지어선 낡은 소금창고가 무거운 침묵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갔고, 잔잔한 새벽 바람에 날리는 갈대 이파리들이 사각사각 이른 새벽 인사로 나를 맞아 주었다. 그렇게 삼십여 분을 걷다가 오른쪽에 보이는 한 창고를 향해 둑길을 내려섰다. 아직도 하늘은 짙은 구름과 어둠에 덮여 간간이 작은 빗방울을 뿌리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잔 생각이 간절했지만 게으른 탓에 준비를 못 해왔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가방과 삼각대를 염전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니 동쪽 하늘에서 희미한 빛이 조금씩 들판의 윤곽을 비춰주기 시작했다. 

TMX 400 필름을 카메라에 끼우고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촬영을 시작했다. 희미한 새벽빛에 둘러쌓인 소금창고 뒷편으로 저멀리 개발이 시작된 아파트 건설현장의 불빛과 위압적인 콘크리트 건물을 함께 앵글에 담고 셔터를 눌렀다. 



느린 셔터 소리만이 새벽 들판의 정적을 가르며 잔잔히 울려퍼졌다. 

새벽 하늘빛이 점차 들판에 내려 깔리자 폐허가 된 염전의 처량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편편하게 타일이 깔린 바닥위로 뭔가 큰 중장비가 지나간듯 두꺼운 줄이 두갈래로 바닥을 누르며 지나간 흔적이 있고, 여기저기에 부서진 판자조각이며 염전 도구들이 널린 사이로 소금을 먹은 잡초들이 마른 잎을 움츠리고 있었다. 



날이 완전히 밝아오자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갈대와 잡초가 우거진 들판 사이로 난 길을 한참 가다보니 옛날 폐차장 있던 자리가 나타났다. 



몇년 전에는 수백대의 폐차들이 얼기설기 쌓여서 주말이면 사진쟁이들이 몰려와 환경이 어쩌구 재활용이 어쩌구 하면서 사진촬영에 몰두하던 곳이다. 가끔은 서울에서 대형버스를 타고 몰려온 사진그룹에서 누드촬영을 한답시고 벌거벗은 모델을 부서진 트럭 짐칸 위나 운전석에 앉히고서는 수십대의 카메라에서 요란한 셔터소리와 모델에게 이런저런 포즈를 주문하는 소리로 시장판을 방불케 하기도 했었고, 작품촬영을 위한 연출이란 명목으로 차의 유리장을 돌로 때려 부시고 쌓아놓은 차에다가 불을 지르기도 하면서 포악한 파괴본능과 쌓인 스트레스의 해결장으로 이용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폐차장을 좀 떨어진 곳으로 옮기고 주위에 겹겹이 철책을 둘러놓아 극성스러운 사진쟁이들의 접근을 막아버렸고, 옛날 그 자리에는 누군가 몰래 갖다버린 가구며, 가전 제품등의 생활쓰레기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을 뿐이었다. 

폐차장 옆 수로에는 바닷물이 빠져 진회색의 뻘이 바닥을 보이고 있고 저편에는 수로를 건너는 유일한 다리가 여기저기 부서져 나간 교각을 바닥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옛날에는 그 다리위에 놓인 간이 철길 위로 소금실은 화차가 분주히 다녔겠지만 지금은 철길도 사라지고 들짐승들만 한가로이 오가고 있을 터이었다. 





주위를 돌며 물빠진 갯벌과 황량한 다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 다리를 건넜다. 날이 밝은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뿌연 하늘은 시간을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비가 내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들어오던 길의 수로 반대편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저 벌판 건너편이 예전에 자주 촬영 다닐때 들어왔던 방향이야." 라고 후배에게 손을 들어 가리키며 얘기하는 순간 바로 몇걸음 앞의 갈대숲에서 '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치솟아 올랐다. 깜짝 놀라 멈칫하면서 쳐다보았더니 장끼 한 마리가 화려한 깃털과 쭉 뻗은 꽁지를 뽐내며 날아가는 것이었다. 멋진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다시 몇 걸음 더 걸어가는 순간 이번에는 새끼 꿩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퍼덕이며 저쪽으로 날아갔다. 우리가 사냥꾼이 아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들뜬 발걸음을 옮기며 염전의 모습을 스케치 해나갔다. 갈대숲 사이로 난 길에 서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며 한숨을 돌리곤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저 앞 바닥에 이상한 물체가 눈에 띄었다. 커다란 회색의 새 한 마리가 길위에 떨어져 있었는데 다가가서 보니 왜가리 종류로 보이는 새였고 몸에 별다른 상처는 없는 듯 했다. 수명이 다해 죽었거나 뭔가를 잘못 먹고 죽었으리는 짐작 밖에 우리로서는 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서는 길 옆으로 옮겨놓기 위해 날갯죽지를 잡아든 순간 새의 머리가 아래로 축 처지면서 입에서 핏방울이 주룩 흐르는 것이 보였다. 섬찟한 느낌과 함께 아마도 오염된 먹이를 먹고 탈이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몇 컷의 사진을 촬영하고는 길 옆으로 치워 놓고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갈대밭 길을 지나 넓게 트인 들판으로 나오니 바닷물의 출입량을 조절하는 둑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밀물과 썰물에 맞춰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오르내렸을 수문들이 지금은 굳게 닫힌채 붉게 녹슬어가고 있었다. 



주위를 돌며 둑의 모습을 촬영한 뒤 계단을 올라가 꼭대기에 올라서니 드넓은 염전 벌판이 시원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삼각대를 펼쳐 중심을 잡고 전후좌우로 돌려가며 높이를 맞춘뒤, T-90 카메라에 24밀리 렌즈를 끼워서 삼각대에 얹었다. 그러고는 길게 뻗은 수로의 한편에서부터 시작하여 카메라를 수평으로 360도 돌려가며 염전의 전경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10여 컷트의 필름에 기록했다.



염전이 개발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도 이 사진들은 마술램프 속의 지니처럼 나를 언제나 염전의 한 가운데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기대가 내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다시 한번 사방을 둘러 보았더니 저 아랫 쪽 길에 두 여인이 머리에 물통 같은 것을 이고 손에는 갈쿠리 같은 연장을 들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서있는 둑 아래를 지난 여인들은 수로 옆의 경사진 뻘밭으로 들어가서는 갈퀴로 뻘을 여기저기 파헤치는 것이었다. 135밀리 망원렌즈로 그 모습을 자세히 보니 낚시 미끼로 쓰이는 갯지렁이가 갈퀴에 걸려 나오는 것이 보였다. 찰칵 찰칵 그 모습도 쉴새없이 카메라로 빨려들 즈음에 한 여인이 우리가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는 과히 달갑지 않은듯 손을 가로 저어댔다. 

다시 걸음을 옮겨 나오면서 소금창고 옆의 작은 수로에 걸쳐 있는 삐걱대는 나무 판자 다리와, 길가에 서있는 나무위의 까치집 등을 스케치 하다보니 어느새 우리가 새벽에 출발했던 지점의 건너편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정오, 깜깜한 새벽에 출발하여 꼬박 여섯시간의 염전 여행을 한 셈이었다. 



잊고 있었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서둘러 다리를 향해가는 우리 앞으로 화사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과 검은 턱시도의 신랑을 앞세운 웨딩 촬영팀이 커다란 카메라와 렌즈를 들고 바쁜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가까운 곳에 있는 창고를 향해 뒤뚱뒤뚱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행복한 결혼 앨범 한 페이지에도 이 염전의 모습이 작은 역사로 남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멀어져가는 그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큐피드의 화살을 날리듯 셔터를 눌렀다. 

" 철컥 ! " 



1998년 12월 1일. 

오늘 아침의 염전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을 것이다. 


복사골에서. 


Ⓒ 부천라이프 김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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